미중 AI 반도체 전쟁: 한국에 주는 함의
1. 머리말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전장은 AI 반도체이다. AI 반도체는 더 이상 단순한 산업재가 아니라 군사·정보·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전략자산이 됐기 때문에, 이 경쟁은 단순히 기업 간의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의 사활을 건 정책·전략 대결로 비화됐다. 산업정책 측면에서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자국 내 유치’를, 중국은 ‘기술 자립을 통한 수입 대체’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경제적 강압 측면에서 미국은 ‘다자간 동맹을 통한 촘촘한 그물망 제재’를 구사하고 있으며, 중국은 ‘핵심 자원 무기화와 틈새시장 공략’으로 맞서고 있다.
AI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경쟁은 경제안보에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첫째, 수출통제와 산업보조금이 결합되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은 효율보다 블록화와 중복투자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나라와 같은 중견국은 미국의 제재 체제와 중국의 산업정책 사이에서 선택 압력을 받는다. 둘째, 제재가 강해질수록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달리 중국의 국산화 역량이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즉 제재는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를 늦추지만, 동시에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도 키운다. 중국이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면, 우리 반도체 산업은 큰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산업정책
미국은 2022년 제정된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반도체 산업 재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법은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 공급망 재편이다.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기지를 미국 내로 유치한다. 둘째, 기술 주도권 유지다. 첨단 공정(7nm 이하) R&D 지원을 통해 기술격차를 확대한다. 셋째, 인력 양성이다. 반도체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확대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건립에 390억 달러의 직접 보조금을 제공하고, 제조 장비 투자 비용의 25%에 대한 세액공제를 포함하여 총 527억 달러를 지원했다. 엔비디아, AMD, 퀄컴, 애플, 구글 등 설계 기술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은 TSMC와 삼성전자가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미국 내에 건설하도록 유도했다.
중국 반도체 정책의 목표는 미국과 확연히 다르다. 첫째, 중국산 반도체의 수요 창출이다. 기술 수준이 낮고 가격도 높지만, 중국 정부는 중국산 반도체의 우선 구매를 의무화함으로써 데이터센터 등 공공부문에서 중국산 반도체 사용을 밀어붙이고 있다. 둘째, 반도체 기술의 국산화이다.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80%를 달성하기 위해서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가 집중되는 장비·소재 분야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여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중국의 국가 주도 반도체 투자 누계는 1,500억 달러를 초과했다. 이는 미국 반도체 과학법의 3배에 달한다. 가장 중요한 재원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조성된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약칭 ‘대기금(大基金)' -이다. 대기금은 반도체 설계·제조·장비·소재·패키징을 포함한 전체 공정에 투자되고 있다.
중국이 추격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미국과 격차는 여전히 크다. 중국은 7nm 공정을 완성하고 AI 칩·메모리에서 국산화 속도를 높였지만, EUV 장비 부재와 기초 기술 부족으로 5nm 이하 첨단 공정 진입은 현재 불가능하다. 또한 중국산 칩이 글로벌 생태계와 표준을 완벽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EDA 소프트웨어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시장은 미국 기업이 80% 이상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엠파이어 테크놀로지 등 국산 EDA 기업 육성에 투자하고 있으나, 생태계 검증 부족으로 선진 공정 설계에는 여전히 시놉시스, 케이던스, 지멘스 등 외국 소프트웨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한국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를 통해 HBM2 양산을 시작했으나, 성능과 수율 면에서 한국기업과 차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은 수출통제를 통해 중국 AI기업의 첨단 HBM 구입을 차단함으로써 중국 AI기술의 발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3. 경제적 강압
미국은 2022년 10월, 2023년 10월, 2024년 12월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를 강화했다. 2022년 10월 상무부 산업보안국은 첨단 컴퓨팅 칩과 반도체 제조장비를 최초로 대중국 수출통제 목록에 등재했다. 2023년 10월 수출통제의 범위가 중국 외 43개국으로 확대되고, 우회로를 차단하는 규정이 도입됐다. 2024년 12월 HBM과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가 수출통제 목록에 포함되고 실체 목록(Entity List)에는 140개 기업이 추가됐다. 미국은 화웨이, SMIC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의 원천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미국 자본이 중국 첨단 AI 및 반도체 분야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기술이전도 강력히 차단하고 있다. 한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강국들과의 소다자 동맹(Chip 4 등)을 강화하여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였다. 올해 미국 의회는 '하드웨어 기술 통제 다자 동조법(Multilateral Alignment of Technology Controls on Hardware Act)'와 '반도체 보안법(Chip Security Act)'를 통해 동맹국과의 수출통제 공조를 강화하고 및 성능 기준의 회피를 방지하고자 한다.
미국의 다층적 제재에 중국은 네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첫째는 희토류 수출통제이다. 반도체 및 첨단 전자 부품의 필수 원자재인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희토류 등의 수출을 허가제로 전환하며 공급망을 인질로 잡는 자원 무기화 전략을 펴고 있다. 둘째는 불신뢰 실체 목록(Unreliable Entity List; 不可靠实体清单)이다. 방위산업과 연계된 미국 기업 11개 사의 중국 내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셋째는 미국산 반도체 수입 제한이다. 중국은 AI용 첨단 반도체인 엔비디아의 H100보다 성능이 낮은 H200의 수입을 차단해 중국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급락했다. 중국 내 중요 정보 인프라에서 미국 마이크론제품의 사용도 제한됐다. 넷째는 제3국을 통해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의 중동 국가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를 통해 중국 기업은 미국이 수출통제하는 소재·장비·부품의 조달 경로를 다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활용하는 경제적 강압은 글로벌 반도체 및 AI 공급망을 양분화시키고 있다. 효율성을 극대화한 글로벌 분업 체제가 약화시키고, 비용 상승과 혁신 속도의 저하라는 부작용도 초래되고 있다.
미국의 수출통제는 중국의 단기적 기술 접근을 제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자립화 의지를 강화하고 국산 대체 기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미국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ASML), 일본(도쿄일렉트론) 등 핵심 장비를 생산하는 우방국과 공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아 미국의 제재 동참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4. 경제안보에 주는 함의
미국과 중국의 AI 반도체 경쟁은 산업정책과 외교정책이 상호 연계된 복합적 전략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은 내부 역량 강화와 외부 통제, 중국은 자립화 투자와 비대칭적 보복을 각각 추구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미국 주도의 첨단 공정 공급망과 중국 주도의 성숙 공정 공급망으로 이원화될 경우, 제3국 기업들은 제재 준수와 시장 접근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경제안보 관점에서 미중 경쟁은 단순한 기술 우월성 다툼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동맹국 관계 관리, 장기적 기술 생태계 주도권 확보라는 다차원적 과제를 제기한다. 양국이 보호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글로벌 혁신 속도가 저하되고 경제적 비용이 증대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제안보 강화와 글로벌 협력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 편승은 경제안보의 강화보다는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 높다. 한국과 같은 중간국가는 양측의 기술 생태계 내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하며 핵심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 구분 | 미국 | 중국 |
| 전략적 목표 |
중국 추격 방지 자국 제조 역량 부활 |
미국의 기술 봉쇄를 돌파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완성 |
| 산업 정책 | CHIPS법 중심 보조금·세제 혜택 글로벌 제조 파운드리 자국 내 유치 민간 혁신 생태계(엔비디아 등) 극대화 |
반도체 대기금 기반 국가 주도 투자 핵심 장비·소재의 100% 국산 대체 성숙 공정(레거시) 시장 선점 및 확장 |
| 경제적 강압 |
첨단 AI 칩 및 제조 장비 수출 통제 Chip 4 동맹 등 다자간 중국 배제망 구축 대중 첨단 분야 자본 투자 금지 |
갈륨·게르마늄 등 핵심 원자재 수출 규제 특정 미국 기업 시장 제한 비서방 국가(글로벌 사우스) 중심 공급망 확장 |
참고문헌
Gregory C. Allen (2025). DeepSeek, Huawei, Export Controls, and the Future of the U.S.-China AI Rac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Kyle Chan (2026). Competing AI strategies for the US and China, Brookings Institution.
Trelysa Long (2025). Decoupling Risks: How Semiconductor Export Controls Could Harm US Chipmakers and Innovation, 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
Karen M. Sutter (2025). U.S. Export Controls and China: Advanced Semiconductor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Abstract
The U.S.-China AI Semiconductor War: Implications for Korea
The core battleground of the competition for technological hegemon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is AI semiconductors. As AI semiconductors have ceased to be mere industrial goods and have become strategic assets supporting the military, intelligence, and industrial sectors as a whole, this competition has escalated beyond a simple technological rivalry between companies into a policy and strategic showdown on the survival of nations. In terms of industrial policy, the United States prioritizes "attracting global supply chains to its domestic market," while China prioritizes "import substitution through technological self-reliance." In terms of economic coercion, the United States employs a "tight-knit sanctions network through multilateral alliances," while China counters by "weaponizing key resources and targeting niche markets."
The competition between the U.S. and China over AI semiconductors holds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economic security. First, the combination of export controls and industrial subsidies is driving the global semiconductor market toward bloc formation and redundant investment rather than efficiency. Middle-power nations like South Korea face pressure to choose between the U.S. sanctions regime and dependence on China's market. Second, contrary to the U.S. intention to maintain a technological gap, sanctions may actually strengthen China's capacity for localization. In other words, sanctions slow China's pace of technological catch-up, but at the same time strengthen its determination to pursue technological self-reliance. If China establishes an AI semiconductor ecosystem, our semiconductor industry will be unable to avoid a major shock.
Keywords: United States, China, AI, Semiconductor, Industrial Policy, Economic Coercion
-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